2024.03.29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문화/체육

경내는 거대한 예술작품… 불교문화 꽃피우다

용인의 문화예술인 ➐ 와우정사 해곡 큰스님(대한불교열반종 종정)

 

   

 

 

                                     

 

[용인신문] 와우정사는 경내 전체가 하나의 예술작품과도 같은 곳이다. 연화산(처인구 해곡동) 봉우리부터 제일 아래 초대형 불두를 모신 연못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건축물과 조형물들이 자연과 조화로운 구도 속에 아름답게 어우러져 있다. 건축물 하나하나, 조각품 하나하나가 불교 무형문화재들의 솜씨가 닿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는 송두리째 예술품인 곳이다. 이같은 하드웨어 외에 보유하고 있는 3000여점의 세계 불교유물도 단연코 최고최대 규모다. 와우정사는 그 자체가 보물로서 존재하는 곳이다. 와우정사는 처인구 해곡동 연화산 자락 대자연의 품에 연꽃처럼 펼쳐져있다. 이곳을 설계하고 건축해 오늘날의 대 사찰을 있게 한 주인공은 주지스님인 해곡 큰스님(대한불교열반종 종정)이다.

 

해곡 스님은 불국사를 지은 김대성처럼, 스페인의 천재 건축가 가우디처럼 타고난 미적 감각과 조형적 감각으로 오늘날의 와우정사를 이뤄냈다.

 

올해 창건 50주년, 1970년에 창건했을 때 이 거대한 와우정사의 전체적인 설계도를 그리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가우디가 설계도 없이 건축을 했듯이 저 역시도 설계도가 없어요. 모든게 마음속에 있지요.”

 

해곡 스님은 “성보는 성직자의 마음에 담고 있는 것일 뿐”이라며 앞으로 이뤄나갈 일주문, 사천왕상 등의 불사 역시 마음으로 이뤄나갈 것임을 전했다.

 

돌탑을 쌓을 때 돌을 하나하나 씻어서 쌓아올렸듯이 그런 정성스런 불심과 타고난 천재적 감각으로 와우정사를 일궈냈다.

 

그는 개인적으로 불교예술에 뛰어난 심미안을 갖추고 있다. 불교 무형문화재들의 손을 빌어 자신의 예술혼을 실현했다.

 

“건축이 됐든, 조각이 됐든 그 사람들한테 맡겨두는 게 아니죠. 그 사람들을 근본적으로 나로 만들어야 해요. 오랜 시간이 걸려요. 내 뜻을 담게 하려면 이리저리 하면 좋겠다고 끊임없이 의견을 말해요. 하다가 그만두는 사람들이 많아요.”

 

해곡 스님은 웃으면서 말하지만 무형문화재들의 고충은 안봐도 본 듯하다. 해곡 스님의 꼼꼼함과 치밀함에 혀를 내두르고 두 손을 번쩍 들었을 게 뻔하다.

 

대부분 10년 넘는 오랜 시간동안 혼을 쏟아가면서 만든 작품들이다. 와우정사 불사에 참여한 스님들은 불교미술대전에서 최고상인 종정상을 받았거나 해방 이후 최초의 불교무형문화재들의 제자, 손자 스님들이다. 따라서 오늘날 와우정사에 있는 모든 건축, 석축, 불상, 불화, 범종, 단청, 석탑 같은 성보는 한결같이 유물적 가치가 있는 훌륭한 예술품들이다.

 

“우리 사찰의 건축물과 조형물은 모두 불교 무형문화재들의 손길로 이뤄진 것입니다. 또한 부처님 한 분도 복제품이 없습니다. 모두가 현시대에 맞게 새롭게 만들어진 와우정사 유일의 것입니다.”

 

와우정사 경내 제일 위쪽 대각전에는 미얀마 백옥 고행상이 모셔져 있다. 그 아래 열반전에는 누워계신 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대한불교 열반종의 본존불인 와불이 바로 와우정사의 본전인 열반전에 모셔져 있는 것이다. 향나무를 통으로 조각해 만든 부처님으로 12×3m의 규모다. 그 아래에 대웅전이 있고 초입에 8m 높이의 불두가 조성돼 있다. 88올림픽 때는 통일의 종 타종식 장면이 미국 NBC방송 촬영으로 전 세계에 위성중계 되기도 했다.

 

와우정사는 전통사찰이 아니다. 전통사찰이 되려면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의 불교 양식으로 창건하고 불사를 이어가야 한다.

 

그러나 해곡 스님은 현대의 사찰은 현시대에 맞는 양식으로 지어져야 한다고 믿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 사상과 문화와 얼굴 모습이 달라지는 것이고, 역사 역시 윤회하면서 변화 발전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현대에 짓는 사찰은 현대에 맞게 지어져야죠.”

 

와우정사의 무한 창조성의 근원. 와우정사는 고려시대, 조선시대의 사찰이 그러했듯 대한민국현시대의 사찰의 역사를 새롭게 써내려가고 있다.

 

와우정사가 지금까지 펼쳐온 이같은 노력은 부처님의 진리를 그림으로 이해시키는 변상도와 같다.

 

“경전을 통해 부처님의 진리를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경전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불교예술로 부처님의 진리를 일깨우는 것도 중요하지요.”

 

와우정사에는 세계 각국에서 수집한 부처와 불교예술품도 많다.

 

“고려불화 160점이 다 외국에 있어요. 삼국시대 범종, 고려시대 범종도 다 일본에 있어요. 이런게 안타까움이에요. 또 경전을 공부하다보면 세계 각국의 성보를 공부해야 하는데 자료가 있어야 공부를 할 것 아닙니까. 그래서 수집에 나섰죠. 어렸을 때부터 꿈이었습니다.”

 

해곡 스님은 9살에 해인사 윤고암 스님의 제자로 출가했다. 함경북도 나진 출생으로 해방되면서 월남해 부산에 정착했다. 건어물, 간장, 설탕, 밀가루 등 대형총판을 하는 부유한 부친 덕에 와우정사 불사를 크게 시작할 수 있었다.

 

와우정사는 해외에서 더 유명하다. 태국 사람들은 평생 꼭 가봐야 할 성지로 꼽는다. 태국에서 연간 20만여명의 불자들이 쉴 새 없이 다녀가고 있다. 미얀마, 스리랑카, 라오스, 중국까지 총 30만여명이 다녀간다. 국내 관광객들도 수없이 다녀간다.

 

해곡 스님은 불교박물관을 짓기를 소망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불교문화재를 마음껏 관람할 수 있도록 하고 싶어서다.

 

해곡 스님 평생의 열과 성과 혼을 바쳐 이뤄내고 있는 와우정사의 화룡점정을 찍는 순간은 언제일까. 화룡정점은 과연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