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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

독립운동 발자취 ‘집대성’

‘한국 독립운동과 용인’
용인문화원 뜻깊은 발간

 

[용인신문] 용인 독립운동의 역사를 정립하고 선열들의 희생정신을 선양하기 위한 독립운동 총서 발간 사업의 첫 번째 서적으로 ‘한국 독립운동과 용인’이 나왔다.

 

용인문화원은 지난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용인의 독립운동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독립운동 역사를 되돌아보고, 선열의 뜻을 기리기 위해 독립운동사를 발간했다.

 

이 책에는 한국의 독립운동과 용인 사람들을 비롯해 한말의 구국운동, 1900년대 국내외 독립운동, 3.1운동, 1920년대 국내외 독립운동, 해외 무장 독립투쟁, 용인사람들의 구국 독립운동의 의의가 실렸고, 부록으로 용인 독립운동 유적지를 담았다.

 

용인에서는 3월 21일 처인구 원삼면 좌찬고개에서 지역 주민이 만세부른 것을 시작으로 수여면, 포곡면, 기흥면, 수지면, 모현면 등 용인 전역으로 확산됐다.

 

용인에서는 일제에 국권 피탈을 좌시하지 않고 자결로 항거하는 가 하면 민초들이 의병운동을 전개했다. 수많은 인사들이 국내외에서 투쟁을 벌였다.

 

1905년 영국 정부가 일본의 조선 지배를 보장하는 제2차 영일동맹을 체결하자 주영 서리공사로 있던 이한응은 강력한 항의 표시로 자결 순국했다.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민영환도 자결했다.

 

이어 1907년 대한제국의 군대가 해산되자 임옥여, 정주원, 이익삼 등이 의병을 일으켜 투쟁을 벌였다.

 

1910년 일제가 국권을 피탈하자 용인 출신의 독립운동가들이 국내외에서 항일 투쟁을 벌였다.

 

여준은 서간도로 망명해 신흥무관학교 교장을 지내면서 독립군을 양성했고, 김혁은 청산리 전투에 참여했으며 신민부를 결성해 김좌진 등을 이끌고 독립투쟁을 벌였다.

 

오인수 의병장의 아들 오광선은 광복군에서 항일 투쟁을 전개했으며, 부인과 두딸까지 3대에 걸쳐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이외에도 의열단의 남정각, 남만주 항일 유격대의 이흥광, 조선의용군의 정철수 등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있다.

 

이번 총서 발간은 과거의 기념과 회상에 끝나지 않고 역사적 가치와 위상을 제고할 수 있는 문화콘텐츠로서 개발해 애국선열들의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선양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