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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땀 한땀… 규방공예 ‘명인’

용인의 문화예술인 4. 규방공예가 변인자

 

23년 간 손 바느질 ‘조각보’ 외길 인생 
“정교하고 한없이 넓어 지루할 틈 없어”
올해 ‘클래식 블루’ 바다 색 매력에 빠져

 

[용인신문] “우리나라의 규방 공예는 단아하고 얌전합니다. 전통의 느낌을 계속 유지하면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내 임무는 전통을 살려서 후세대로 계승하는 것입니다.”용인문화원 부설 규방공예연구소 변인자 소장은 조각보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절제의 미라고 강조하면서 전통 손바느질을 이어가고 있다.

 

한땀한땀 정성스럽게 바느질 땀을 뜨는 가운데 그녀는 무념무상의 세계, 무아지경의 세계를 경험한다.

 

전통 보자기, 조각보는 원래 옛 조상들이 한복을 만들다 남은 자투리 천을 이용해서 만들었던 생활 공예품이다. 알록달록한 자투리천의 한계 내에서만 작업이 이뤄졌기 때문에 색과 질감과 세련미가 떨어졌다.

 

그러나 요새는 과거와는 달리 헝겊의 색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고 천의 재료도 많아졌기 때문에 창작의 세계가 넓고 세련돼졌다. 품격 있는 멋스러움 때문에 보자기보다는 발이나 액자 등 인테리어용품으로 각광을 받는다.

 

천의 색과 질감과 두께에다 문양의 형태까지 가미되면 창조의 세계가 실로 무궁무진한 게 규방공예다.

 

23년간 한시도 손에서 바느질을 놓은 적이 없이 외길 인생을 걷고 있는 변인자 소장.

 

그녀는 늘 새로운 느낌, 새로운 문양이 주는 규방공예의 매력에 푹 빠져있다.

 

그녀는 조각의 모양과 크기가 저마다 다르고 테두리천을 사각으로 잇느냐 사선으로 잇느냐에 따라서도 느낌이 다를 정도로 조각보의 세계는 정교하고 한 없이 넓기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다고 말한다.

 

변 소장은 밑그림 없이 작업을 해 나간다. 처음에는 그녀도 밑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모든 걸 계획해놓고 그대로 한다는 게 천의 세계에서는 쉽지 않다. 원하는 색이 없을 수도 있고 구상에 딱 들어맞는 천이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작품의 큰 구상이 끝나면 천을 잡고 바느질에 들어간다.

 

밑그림 없는 작업은 무척 어렵다. 머리에 지진이 날 정도다. 진통이 따른다.

 

천의 색과 질감, 두께에 따라 느낌이 다르고 천의 무늬에 따라서도 느낌이 틀리기 때문에 적재적소에 맞는 재료를 선택해서 다양한 형태와 크기로 조각을 이어나간다는 것은 어찌 보면 고통에 가깝다.

 

유화나 수채화가 보통 같은 톤에서 10가지 색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는 것에 비하면 천의 경우는 정말로 사용할 색이 별로 없다. 더군다나 물감은 색과 색을 섞기까지 하니 원하는 색을 맘껏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헝겊의 세계는 많아야 5가지 색이다. 그라데이션을 표현하기가 막막하다.

 

이러한 색의 한계 속에서 고도의 절제 미로 태어나는 것이 규방공예다.

 

변 소장은 오랜 시간 창작의 고통 속에서 작품을 탄생시켰다. 작품에 따라서는 하나를 만드는데 몇 년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변 소장은 인문학적 사유가 끝난 후에야 작업에 들어간다.

 

조각보에 4계절을 담거나, 희노애락을 담을 경우 계절이 주는 느낌과 색과 온갖 기억을 모두 사유한 후에야 비로서 작업에 들어가는 식이다. 희노애락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요새 단 두 가지 색만으로 인간의 삶을 담아내는 작업에 들어갔다. 2가지 색이지만 여러 형태의 인생 이야기를 모두 실어낼 수 있다. 조각의 형태가 크고 작고, 네모지고, 세모지고, 똑바르고, 비뚤고 수많은 변형 가운데 내 삶과 네 삶의 모습이 가득 담기게 된다.

 

에피소드 1, 2, 3, 4 이런 식으로 제목이 달릴 작품에 온갖 삶의 이야기가 다 들어가게 된다.

 

고전문양에 여의문양과 국화문양이 있다. 변 소장은 문양의 본을 만들어냈다. 누구도 가르쳐주는 이가 없고, 어떤 기록에도 나와 있지 않은 방법을 스스로 수십번 수백번의 연습과 경험을 통해 터득했다.

 

변 소장은 느린 바느질처럼 한걸음 한걸음 결코 서두르지 않고 꾸준하게 전통 규방공예의 본질을 터득하고 하나하나 실현해 내면서 방법과 기록을 쌓아가고 있다.

 

변 소장은 지금까지 완성한 단 하나의 작품도 팔지 않았다. 간혹 선물로 준 기억은 있지만 팔아본 기억은 없다. 상자에 차곡차곡 접어서 유물처럼 보관해 놓았다.

 

“언젠가 누군가가 내 작품을 통해 규방공예를 배우고 수업하는 데 쓰일 좋은 본이 되면 좋지 않겠어요.”

 

그녀는 밤이고 낮이고 꼬매고 또 꼬맨다. 그게 변인자 소장의 생활이다.

 

한땀 한땀 집중하면서 무념무상의 경지에 빠져드는 규방공예.

 

“조각보는 인내에서 얻어집니다. 그냥 참고 하는 게 인내가 아니에요. 거기에 정성을 퍼 넣는 것이에요. 그래서 인내는 시간을 할애했다는 의미보다는 내 정성을 쏟았다는 의미에 가까워요.”

 

요즘은 바다의 매력에 푹 빠졌다. 바다의 색이 얼마나 오묘하고 다양한지 모른다. 올해의 색은 클래식 블루다. 지난해는 로열 핑크였다. 조각보에서 색은 매우 중요하다. 트렌드를 따라가고 색을 연구하는 자체만으로도 바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