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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주가 예술가입니까?

김종성(소설가, 전 고려대 문화창의학부 교수)

 

[용인신문] 11시 30분 여주전철역 대합실에서 문우를 기다린지 10분도 채 안 되어 문우가 그의 지인과 함께 나타났다. 문우의 지인이 우리를 신륵사 근처 주차장에 내려다 주고 떠났다. 신륵사 경내를 돌아보며 문우가 이규보와 명성황후에 대해 이야기했다.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한국사를 전공한 문우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이규보는 황려(黃驢: 지금의 경기도 여주시)사람으로 알려져 있다.『동국이상국집』연보에 황려 사람이라고 씌어져 있는 것을 근거로, 그가 태어난 곳을 황려로 보는 견해도 있어 그는 황려와 관계있는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아무튼 황려에는 그의 집안 사람들인 이씨 일족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대개 호장(戶長)·교위(校尉)같은 향직(鄕職) 노릇을 했고, 농토도 갖고 있었다. 이 호장․교위 등은 지방 토착 세력을 대표하는 계층이었다. 신륵사에서 가까운 여주박물관을 돌아보고 기념 촬영을 했다.

 

어둠이 내리는 여주 전철역사 부근은 적막했다. 명성황후는 복원된 생가와 기념관이 있고, 시내 한복판에 동상이 있어 명성황후가 여주 사람이라는 것을 각인시켜주었다. 여주 기행을 떠나기 전 여주에 가면 이규보의 살아 생전 흔적을 찾아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여주의 그 어느 곳에도 이규보 생애와 문학 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이규보가 『동국이상국집』이라는 방대한 문집을 남긴 한국문학사의 큰 봉우리임에도 불구하고 이규보아트홀이라는 이름의 ‘아트홀’과 이규보 문화제가 여주에서 개최되지 않은 걸 보면 이규보 후손들이 여주에서 살고 있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경기도 용인시에는 용인 출신도 아니고 용인에서 살았다는 기록도 없는데, 다만 그의 무덤이 용인에 있다는 이유로 용인의 ‘예술의 전당’이라 할 수 있는 건물을 정몽주의 호를 따서 포은 아트홀이라고 이름 짓고, 해마다 포은문화제를 개최한다. 정몽주는 한국정신문화원에서 펴낸 『한국민족문화백과사전』에 보면 경상북도 영천 출생의 관리·학자·문신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정몽주를 예술가라고 소개하지 않고 있다. 정몽주는 「단심가(丹心歌)」라는 시조의 작가이고, 조동일이 『한국문학통사』에서 「독역(讀易)」·「관어(觀魚)」·「동지(冬至)」 같은 한시가 “철학적인 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고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예술가가 아니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아직까지 예술가 정몽주는 낯선 이름이다. 개관한 직후에도 ‘포은아트홀’은 그 명칭을 둘러싸고 논란이 있었다. 처음 ‘포은 아트홀’이라고 이름을 붙인 사람들은 나름대로 정몽주를 예술가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 붙였으리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까지도 ‘포은 아트홀’을 보면 ‘정몽주가 예술가입니까?’하고 묻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은 그 동안 ‘예술가로서의 포은 정몽주’에 대한 정립 작업이 미진했거나 없었다는 것을 뜻한다.

 

이규보는 당대는 물론 한국 문학사를 통틀어 최고의 예술가이지만, 그의 향리 여주에서 그에 상응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정몽주는 표면상으로 보면 용인에서 당대는 물론 한국문학사를 통틀어 최고의 예술가로 대우를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예술가 정몽주는 여주에서의 이규보처럼 예술가로서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예술가로서의 정몽주에 대한 연구나 재조명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몽주가 예술가로서 제대로 대접받게 하려면 용인시나 정몽주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 나서서 ‘예술가 정몽주 정립’작업을 펼쳐야 한다. 정몽주가 어떻게 ‘철학적인 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는지’연구하고 찾아서 용인시민은 물론 여주시민, 나아가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밝혀주어야 한다. 다시 묻는다. 정몽주가 예술가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