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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

나이 먹다보면 가을과 똑같아, 낙엽처럼

구술로 엮는 미니 자서전 : 내가 살아온 이야기 들려줄게

[용인신문] 실버시대

 

편집자 주 : 한 사람이 살아온 생애는 숱한 우여곡절이 있다. 그분들이 말씀으로 들려주는 인생 이야기는 교실 밖 생생한 역사다. 소중한 기억을 기록으로 남긴다.

 

이석순 전 수지농협조합장(수지향토사학자)

 

40년을 농협에 몸담고 살아온 이석순씨는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서당에 다니고 있으며 자신의 집안 문중사 정리를 거의 다 마쳤다. 고기리 이덕균 독립운동가의 손자로 고기리 산골 마을에서 늦둥이로 태어나 평생을 성실하게 삶을 가꾸고 꽃피워 온 그의 삶의 편린을 구술로 정리했다.

 

#출생

내가 막내여서 우리 어머니가 46세에 나를 낳으셨어. 우리 어머니가 10명을 낳으셨어. 자란 사람은 칠남매야. 세분이 어렸을 때 돌아가셨고. 큰 형님하고는 내가 19살 층하가 지고. 옛날에는 방에다 볏짚을 깔고 출산을 했어. 볏짚과 태는 이삼일 뒀다가 아버지가 마당에 돌을 양쪽으로 세로로 세워놓고 가운데 부분에 놓고 불에 태웠어. 부모님의 낡은 옷으로 기저귀를 만들었고, 형제가 많으니까 배넷저고리는 대물려 입었어. 내가 1944년생인데 살기가 어렵고 고기리 산골마을 농가다보니 산후조리는 보통 3일정도 했어. 아들을 낳으면 왼새끼를 꼬아서 고추와 숯을 매달았고, 딸을 낳으면 솔가지와 숯을 끼워 삼칠일(21일)까지 매달았어. 돌 때 수수팥떡하고 백설기를 이웃에 돌리면 답례로 실타래를 담아 돌려줬는데 이것은 오래 살라는 기원같은 거였지. 어머니 젖이 안나오고 밭에 일하러 간 동안 누나가 콩고물을 먹였는데 내가 그걸 먹고 체했지. 체했을 때는 민간요법으로 자기가 먹은 음식을 태워서 물에 넣어 우러난 잿물을 먹으면 병이 나았어. 그리고 손가락 같은 곳을 바늘로 땄지. 사관을 딴다고 하지.

 

#어린시절

늦둥이 귀염둥이가 아니라 천덕구니로 자랐어. 왜냐면 시골 아주머니들이 들일도 하고 집에 돌아오면 빨래다 밥이다. 저 뭐야 길쌈. 내 어렸을 때 보면 우리 어머니가 물레도 쓰시고 누에를 기르시고 누에에서 실까지 뽑으셨어. 옛날에 여자들이 농사지어서 추수를 하잖아요. 추수를 하면 발랑개비(바람개비)가 없었어요. 그러면 밤새도록 그걸 까불어. 여자들이 콩이나 하여튼 모든 곡식은 다 키로 까부르는 거지. 지금모양 정미소가 없으니까. 보리는 보리방아 집에서 절구로다 찧고, 벼는 디딜방아로 찧고. 우리집에 디딜방아가 있었어요. 한사람은 밟고 한사람은 우겨넣고. 한번해서 어느 정도 껍질 까지면 키질하고 다시 쏟아 붜.

 

#어머니의 시집살이

할머니는 일찍 돌아가셔서 난 못뵜어. 어머니가 시집살이도 했겠지. 우리가 자랄 때도 열식구가 넘었으니까. 우리 형수님도 그렇게 사셨는데 그 양반들은 옛날에 노예로 살은거야. 쉴 새가 없죠. 밤에는 옛날에 무명옷이 쉬 떨어지잖아요. 그러면 기어야죠. 빨래해서 다듬어야죠. 그 전에 양잿물 넣고 삶잖아요. 겨울에는 삶은 물까지 담아가지고 개울로 가. 얼마나 손이 시려워. 그러면 잿물에다, 잿물 가져간 게 약간 뜨듯하잖아. 그러면 거기다 손을 녹여. 몸에 좋다 나쁘다는 나중 이야기고. 그리고 광목이라는 것은 두드려야 해요. 방칫돌에다 다듬어가지고 나중에 홍두깨에다 감아가지고 그걸 말하자면 뚜드리는데 홍두깨를 돌려야 돼. 홍두깨를 돌릴 때는 나 같은 애들이 돌리는거야. 흐흐. 그러니까 실 감고 돌리는 거는 내가 해봐서 잘 알아. 광목옷에는 풀을 먹여야 해요. 그래야 옷이 빨리 더러워지질 않아. 그리고 빳빳해지고 입고 다녀도 폼이 나는거지. 옛날에는 며느리가 고생을 하거나 말거나 어른들이 딱 나갈 때에 후루매기 가져와라. 그러면 후루매기 가져가야지 안가져가면 큰일나지. 시집살이는 그거 말고도 며느리가 시집올 때 잘 안 해왔다 그러면 평생 그걸 가지고 얘기를 하는거야. 요새로 말하면 직장 폭언이라고 하나 괴롭힘이라고 하나. 그러니까 조그만거라도 자기 눈에 안차면 쥐 잡듯 하는거지.

 

#고향 고기리 배나무골

배나무골. 한문으로는 이목동이걸랑. 우리나라가 지명이 일본사람들이 와서 한역화 했거든요. 그래서 동네 이름을 제대로 알 수 있는 곳이 없어. 그 옛날에는 문댕이촌(문둥이)이라고 그러는게 있잖아요. 우리 어렸을 때는 그런걸 굉장히 무서워했잖아요. 밤이면 동네가 깜깜했죠. 옛날에 집도 여나믄 채가 띄엄띄엄 있었는데 백열등 같은 걸 켰으니. 바깥에는 가로등도 없고. 우리 집사람이 시집올 때 문댕이촌에 끌려가는 줄 알았다고 그랬어.

 

독립운동가 늦둥이 손자로 고기리서 태어나 평생 ‘농협인’
한국학중앙연구원 서당에 다니며 집안 문중사 정리 혼신

 

#독립운동가 이덕균의 손자…수지만세탑 세우는데 앞장서

할아버지 후광을 많이 받았을 뿐이지 난 할아버지에 비해 오줌싸개에 지나지 않아. 난 할아버지 앞에서 오줌을 많이 쌌거든. 할아버지는 보상을 바라고 하신 게 아냐. 우리 후손들이 감격스러운거죠. 할아버지는 내가 고기분교 다니면서 소꼴빌 때 77세로 돌아가셨어. 수지만세탑은 수지사람들이 3.1운동이 수지에서 있던 걸 알던 사람이 없어. 시민한테 1억2천800만원을 걷었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수지체육공원에 세우고 싶었는데 인적이 뜸한 새마을공원으로 간게 속상했어.

 

#시 쓰던 중학시절…수지문학회 창립, 수지향토사책도 펴내

우리는 피아노를 보지도 못하고 자랐어. 중학교 때 시를 썼던걸 다 내버리고 고등학교것 하나 기억해. 농협 30년 문학작품 공모에 시 ‘질경이’를 써서 가작입선했어. 수지농협전무시절 20년전에 수지문학회 만들었지. ‘수지향토문화답사기’는 수지농협 다닐 때 일요일에 자문해줄 사람 하나랑 수지전역을 돌면서 10년 걸려 썼어. 역사를 비교적 좋아하는데 93년 수지농협 전무로 와서 보니 지역이 급격히 변화해. 성복동 장수바위가 땅에 묻히고, 영광농원의 바위배기뜰 지명도 없어졌어. 동천리 개울옆 못돌바위, 싯돌바위산 그런게 다 없어졌어. 기록이나마 남겨야겠다는 생각에서 썼지.

 

#40년 농협외길과 새마을 사업

농협이라는데가 일요일이고 공휴일이고 아무것도 없었어. 앞에 푯말에 써놓기를 뭐래했냐면 ‘농협은 일조서부터 일몰까지 공휴일도 국경일도 없습니다’ 그렇게 써놓고 근무했어요. 일도 많았죠. 옛날에는 다 수동식이고 사람도 없으니까. 비료를 대한통운으로 싣고 오면 몇차씩 싣고 오잖아요. 그러면 우리가 그걸 다 받아서 쌓았어요. 지금은 지게차로다 해가지고 딱딱 갖다놓고 그렇게 하지만 옛날에는 육체노동이죠 뭐. 옛날에 지붕개량을 시멘트로 하잖아요. 부엌개량이다 뭐다 양회로 하잖아요. 그러면 대한통운으로 양회가 들어오면 어깨로다 져다 쌓고 가마짝 뭐 다했어요. 내가 시골에서 농사질 적에 새마을사업이 시작되는데 내가 한해 보니까 38일을 내밥먹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무임금으로다 일을 했어요. 국가에 돈이 없으니까. 옛날에 길치도라는 게 있는데 장마철에 구덩이가 생기잖아요. 그러면 자갈 갖다가 구덩이 메꿔야 해. 그런거 다 우리가 자력으로 한거지. 새마을사업 할 때는 즐거운 마음으로 했어요. 길도 나쁘고 개울 건너는데 시멘트로 해서 다리 놓고 하니 얼마나 좋아.

 

#만학의 꿈…경기대 졸업, 한국학중앙연구원 서당 5년째

한국학중앙연구원 서당을 5년째 다니고 있어. 사서삼경, 명심보감 같은 것 배웠지. 지금은 광주이씨 석탄파에 대해 문중사를 쓰고 있어. 경기대 경영학과는 60세 넘어서 2000학번으로 입학해 2005년 졸업했어. 주변에서 뭐하러 거길 다니냐 나이가 있는데. 그것 아니면 조합장 못하냐 별 얘길 다했는데 모든걸 내가 체험하고 싶었거든. 열심히 해서 특별상을 두 개 받았어.

 

#인생을 돌아보니

인간은 화려하다는 게 없어. 나이 먹고 하다보면 가을과 똑같아. 낙엽 지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