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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이여! 제발 발로 뛰어라. 머리로만 쓰지 말고…

오룡(평생학습 교육연구소 대표/오룡 인문학 연구소 원장)



[용인신문] 역사적 경험은 모두 다르다. ‘진상왜곡은 경험을 말살시킨다. ‘나의 경험은 역사지만, 너의 경험은 사건이다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객관화된 역사가 아니다. 그러므로 기자들도 알리라. ‘진상을 조사 중이다라는 기사는 밝힐 진상이 없다는 것을.


콜링우드는 역사를 가위와 풀의 역사라고 정의했다. 과거에 관한 모든 것이 역사적 사실이 아닌 것처럼, 역사적 사실은 역사가의 선택과 해석의 과정을 통해 비로소 역사가 되는 주관적 산물이라는 것이다.


기사화된 모든 글도 각각의 위치에서 쓴 것이다. 쓰인 모든 글이 진리도, 진실도, 사실도 아니다. 글은 소비재일 뿐이다. 간직해야 할 보물이 아니다. 사용자인 독자가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활용하는 도구로 이용된다.


생각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지식을 구조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장차 사는 대로 생각한다.”라는 폴 발레리의 생각에 공감하는 것이 우선이다.


목적을 분명하게 밝힌 글이든, 정치적 목적이 없는 듯 쓴 글이든, 정치적 목적이 존재한다. 글을 쓴 이유는 효과를 위해 쓴 것이다. 데스크의 압력이든, 쟁이의식 이든 간에. 내용의 진위 여부에 대한 확인은 뒷전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글의 진위 여부는 이데올로기에 따른 인식자의 뇌구조에 의해 변화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희망 없이 살 수 없다. 때문에 희망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사람들은 자주 착각을 하며 살지만 자신에게는 쉽게 관용을 베푼다. 사람들은 이데올로기를 만들며 산다. 이데올로기는 너무 간절해서 신앙적이다. 목표는 분명하고 간결하다. ‘돌진앞으로를 외치는 이데올로기에 관용은 없다. 희망은 관념론이고, 신앙은 유물론화 되고 있다.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는 한물간 책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극히 주관적이다. 조금 더 보태자면 필자의 경험이다. 스무 살 즈음에 농촌활동에 참가했다. 여름의 농촌은 평화로웠다. 할 일이 없어 보였다. ‘아뿔싸!’ 햇빛도, 바람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하루 종일 일했다. 2미터의 높이의 거대한 담배아래 밭고랑에서 진득거리는 담뱃잎과 땀이 범벅된 육체는 깨달았다. ‘, 공부하는 게 쉽겠구나


그런데도 대학 4년간은 공부와 담을 쌓고 살았다. 학보사 수습기자 1, 정기자 1, 부장 1, 국장 1년까지 끝내고 입대했다. 역사학과 학생인지, 신문학과 학생인지 구별되지 않았다. 시위 현장을 취재하고, 노동 현장을 다녀오고, 누군가를 인터뷰하고 나면 기사 작성을 위해 수시로 밤을 지새웠다.


원고를 쓰기 위해 몇 번이고 사람을 만나고, 현장을 답사했다. 직접 취재하지 않은 내용은 기사화하지 않았다. 익숙하지 않았다. 그래서 힘들었다. 익숙하지 않았던 것들을 하다 보니, 익숙한 것이 쉽다는 것을 머리가 먼저 알았다.


뜬금없이 말하자면, 기자들이여!


머리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이 손 좋은 것만 못하고, 손 좋은 것이 발 좋은 것만 못하다.”라고 했다지 않은가. 그러니 기자들이여 제발 발로 뛰어라. 머리로만 쓰지 말고.


한마디 더하자면, 기자들이여!


이성복의 시,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에 나오는 <그날>의 마지막 구절을 읽어보라.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재탕, 삼탕 하는 기사를 단독 보도라고 쓰는 중증(重症)이 고착화되나 보다. 방부제의 효과는 딱 여기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