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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은 누구를 위하여 존재하는가?

오룡(평생학습교육연구소 대표/오룡 인문학 연구소 원장)



[용인신문] 학생들이 묻는다. 선생님은 방탄소년단 좋아하세요? 이런 질문에 대한 답변은 경쾌하다. 가끔은 지인들에게 정치적 의견을 강요(?) 받기도 한다. 부담스런 질문을 받으면 슬퍼진다. 보편자의 시선으로 정의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하는 모습이 안쓰럽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는 5000만개의 당파성이 존재한다. 때문에 선호하는 정당이 없다.”라는 말은 당파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당파성을 드러낸 후의 뒷감당을 피하기 위한 전략적 발언이다. , 자기 입장이 분명하다는 것은 용기와 책임감 뿐만 아니라 실천하는 삶으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의무(?)에 대한 부담감이 뒤 따른다. 대한민국은 입장이 분명한, 논리적이고 비판적인 입장을 피력하는 사람을 이유없이 싫어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로인해 정치에 대한 혐오와 무관심층이 생겨난다. 문제는 그 이후다. 지지하는 정파가 없어서 투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투표하지 않은, 무관심의 결과는 무엇인가?


이탈리아에서 무솔리니가 집권하자 기차는 정시에 도착했다는 프로파간다가 등장했다. 변절한 사회주의 언론인 무솔리니는 무질서를 비판하고, 혼란을 잠재우는, 파시즘의 우월성과 능력을 상징하는 인물로 성장했다. 스타카토로 반복되는 무솔리니의 웅변은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몸짓은 연극조로 과장되어 있었고 생각은 모순 투성이였으며 인용은 정확하지 못했다. 무솔리니의 연설은 방향감각을 상실한 시대착오적인 단어들이었지만 집회장을 메운 군중들은 열광했다. 그는 사회적 약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이는 실제가 아니라 만들어진 담론의 효과였다. 이탈리아 기차는 무솔리니가 집권한 1922년 이전부터 잘 달렸다.


미셸푸코에 의하면 권력은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공식적 관계에서의 권력과 일상적 관계에서의 권력, 두가지 구조적 맥락에 위치 지어져 있다.”는 것이다. 일상적 권력이란 사회의 어느 한 곳에 집중되어 있다기보다 사회의 모든 부분에 모세혈관처럼 퍼져 있다. 위에서 아래로가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 흐르며, 공식적인 채널에서보다 비공식적인 일상생활에서 더 적극적으로 작용한다. 일상에서의 권력작용은 사회적 담론을 만들어 내는 강력한 재료가 될 수 있다. 무솔리니가 파시즘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해 이용한 기차는 일상생활에서 질서의 효능에 대한 강력한 과시였다. 권력자의 입장 뿐만아니라 대중들에게도 질서는 사회 안정의 말단 기능이다.


우리 몸은 객관적이지 않다. 중립적인 것은 더더욱 아니다. 우리 몸은 사회적 위치성과 당파성의 행위자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시하는 몸이든, 노동하는 몸이든 그것은 모두 몸이 지배하는 의식이다. 지배하는 의식과 몸은 동일체이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몸이 따라 주지 않는다는 말은 논리의 모순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몸과 의식이 따로 노는 사람이다. 일부 정치인들이 타인의 고통을 살피겠다며 다녀온 민생투어를 통해 무엇을, 얼마나 공감했는지 알 수는 없다. 다만 그들이 다니면서 행한 수많은 언어를 통해서 조금 엿볼 뿐이다. 스치는 것은 투어이지만 그것이 삶인 사람들에게는 고단한 의 여정이라는 사실만은 기억해달라.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이여!


이젠 당신들이 무엇을 함으로써가 아니라 하지 않음으로써 변화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담론화 되고 있다. 최소한 이 말만은, 이 행동만은 하지 않기를 바랬던, 삼세번씩이나 몰랐다고 해명할 바에는 차라리 자연인으로 살라. 정치인으로 살면서 표현의 자유를 금하는 것은 아니다. 표현할 언어가 없는 정치인의 궁색한 변명을 듣기도 이젠 지겨워져서 하는 말이다. “원숭이 똥구멍은 빨갛고, 빨가면 사과라고 말하면 믿는 세상이라고 착각하지 말라. 정치인의 착각이 자유라고도 하지 말라. 정치인의 착각은 무지의 소산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