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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배시인의 감동이 있는 시

취산화서聚散花序ㅣ송재학


취산화서 聚散花序*

                                         송재학

 

수국 곁에 내가 있고 당신이 왔다 당신의 시선은 수국

인 채 나에게 왔다 수국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잠깐 숨죽

이는 흑백사진이다 당신과 나는 수국의 그늘을 입에 물

었다 정지 화면 동안 수국의 꽃색은 창백하다 왜 수국이

수시로 변하는지 서로 알기에 어슬한 꽃무늬를 얻었다

한 뼘만큼 살이 닿았는데 꽃잎도 사람도 동공마다 물고

기 비늘이 얼비쳤다 같은 공기 같은 물속이다


 * 수국의 꽃차례는, 꽃대 끝에 한 개의 꽃이 피고 그 주위 가지 끝에 다시 꽃이 피고 거기서 다시 가지가 갈라져서 그 끝에 꽃이 핀다

 

송재학은 꽃차례에 남다른 관심이 있다. 미시적 풍경에 대한 그의 애정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서정적 이미지의 운용에 남다른 미학을 보여온 그는 수국의 꽃차례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나는 지금 수국 곁에 있다. 수국의 공간을 고유한 나는 이미 수국이기도 하다. 수국에 시인의 시선이 머물기 시작하면 시인의 서정이 투사된 것이어서 수국과 시인은 등가의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 공간에 개입되고 있는 사람이 당신이다. ‘당신의 시선은 수국인 채 나에게 왔다고 노래하는 것으로 보아 당신은 오면서 수국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 모습이다. 수국에 머물고 있는 당신의 시선은 그들의 관계가 어느 지점에선가부터 어긋나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러니 수국을 사이에 두고 잠깐 숨죽이는 흑백사진이라고 긴장 관계를 드러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수국은 둘 사이의 매개항이기도 하고 둘 사이를 밀어내는 장애물이기도 할 것이지만 여기서는 매개항으로서의 역할이 크다. 잠깐 숨죽이는 흑백사진이 되는 두 사람의 관계는 오래된 것이고, 오래되어 낡은 관계지만 끊을 수 없는 운명적인 관계여서 과거를 호명하는 것이다.


이어지는 시문은 에로틱하다. ‘당신과 나는 수국의 그늘을 입에 물었다고 고백한다. 수국의 그늘은 수국은 아니다. 수국을 입에 물지 않고 수국의 그늘을 입에 물었다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아름다운 입맞춤은 언제나 밤의 일이다. 밤이 아니라면 그늘속의 일이다. 그늘이야말로 밤의 대행이니까. 두 사람은 수국의 그늘을 입에 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격정적으로 수국의 그늘을 입에 무는 순간 시간은 정지되었을 것이다. 순간이 영원으로 치환되고 화면은 정지된 채 두 사람의 치명적인 행위가 그늘속의 일이어서 두 사람 또한 그늘은 아닐까. 두 사람이 그늘이라면 이들의 사랑은 불륜일 것이다. 불륜보다 아름다운 사랑은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장면이다. ‘정지 화면 동안 수국의 꽃색이 창백한 이유이기도 하다.


수국이 수시로 변하는 이유를 알고 있는 두 사람은 수국이 두 사람의 사랑의 모상인 걸 알고 있다는 의미다. 수시로 변하는 수국의 꽃 색깔은 그들의 사랑의 색깔이어서 좀 어두운 꽃무늬를 얻는다. 이 시의 시안은 한 뼘만큼 살이 닿았는데 꽃잎도 사람도 동공마다 물고기 비늘이 얼비쳤다는 시문이다. 살이 닿는 순간의 격정은 거대한 물고기의 유영과 같은 생명력이다. 두 사람은 같은 물속이라고, 연시로 읽으면 그렇다는 것이다. 김윤배/시인<용인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