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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哲學)의 빈곤(貧困)을 경계한다

김민철(칼럼리스트)

 

[용인신문] 1965년 6월 22일 한일국교 정상화의 토대가 된 한일기본조약 체결 당시 가장 쟁점이 되었던 일제강점기의 피해배상에 대한 항목은 단 한 구절도 들어있지 않았다. 다만 제1조 1항, ‘일본국은 대한민국에 대하여’라는 제목하에 “일본 엔화 1080억 엔을(3억 아메리카합중국 달러와 동등한 가치를 갖는) 10년간 무상으로 제공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아울러 720억 엔(USD 2억 달러)을 장기 저리의 차관으로 제공한다고 명시했다. 한일기본조약에는 배상은 고사하고 보상이라는 단어도 포함되지 않았다.

 

이 알량한 푼돈을 받고 당시 박정희 정권은 40년 일제 식민지 침탈의 역사를 청산했다. 한일 국교 정상화를 위해 김종필 중앙정보부장과 오히라 일본 외무상이 1962년 11월 비밀 접촉을 시작한 지 3년간의 협상 끝에 얻어낸 결과였다.

 

역대 일본 정부는 식민 지배에 대해 단 한 차례도 사과는 고사하고 최저 수준의 유감을 표시하는 것조차 거부해 왔다. 1965년 한일국교 정상화 이후 지금까지 일본은 상식 이하의 망언을 계속해왔고 일제의 식민지지배를 정당화해왔다.

 

일본이 미쓰비시, 신일본제철 등 전범 기업의 강제징용 피해배상 문제에 대해 대한민국 대법원이 배상하라고 판결하자 일본 정부가 강경한 자세로 일관한 것은 ‘배상(賠償)’이라는 금기의 단어가 적시되었기 때문이었다. 배상은커녕 보상이라는 단어도 사용하지 않았던 오만방자한 일본은 미국을 앞세워 전방위적인 압박을 펼쳤고 가뜩이나 일본에 우호적인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국내기업이 대신 피해보상을 해주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그러고서도 국민의힘 지도부는 식민지 콤플렉스니, 과거사에 발목 잡혀 미래로 나아가지 못한다느니 온갖 언어폭력을 반대자들을 향해 퍼붓고 있다.

 

이쯤 되면 그들이 대한민국 국민인지 일본 국민인지 헷갈린다. 국적은 대한민국이지만 의식은 정반대로 의심된다. 기초적인 자존심조차 내팽개치고 일본과 무조건 잘 지내자고 주장하는 세력들은 가장 기본적인 정체성과 철학이 의심스럽다. 우리 국민이 예수님도 아닌데, 왼뺨을 때리면 오른뺨도 내밀라는 굴욕을 강요하고 있다.

 

어떻게 자칭 정치지도자라는 사람들의 의식 수준이 이토록 저급하고 저열할 수 있다는 말인가.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로 서방의 모든 나라들을 금융의 노예로 만든 이론을 제공한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의 자유’를 읽고 맹신하는 수준의 사람들이 정치지도자를 자임하고 있다. 모르면 가만히 있는 것이 정답이다. 어설픈 지식을 대단한 것으로 착각하는 무지와 만용에 가까운 용기에 할 말을 잃었다. 그들의 철학의 빈곤이 짜증스럽다.

 

윤석열 정부의 정책에 동의하거나 묵인 방조하는 국민은 최대치로 계산해도 35% 남짓이다. 이렇게 허약한 정권이 귀를 막고 눈까지 감아버렸다. 앞으로의 4년이 암담할 뿐이다. 죽을 끓이든 밥을 끓이든 정권을 잡았으니 우리 맘대로 한다고 우기고 싶다면 그렇게 하라. 그렇지만 한가지 만은 당부하고 싶다. 철 지난 신자유주의 경제학을 맹신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자신이 믿는 것을, 그것에 반대하는 국민에게 강요하지는 말라. 혼자만 무식하면 된다. 왜 똑똑한 국민까지 바보로 만들고 싶어 안달인가.

 

일본에 피해배상을 요구하는 것이 식민지 콤플렉스라면 과거사는 훌훌 털어버리고 일본이 요구하는 것은 가능하면 들어 주자는 주장은 친일본색(親日本色)인가. 그것이 궁금하다. 솔직히 말해서 이제는 비판하는 것에도 지쳤다. 국민이 우려하고 반대하는 목소리에 그들이 귀 기울일 것이라 기대하지도 않는다. 시작부터 철학이 빈곤한 사람들에게 무엇을 바라겠는가. 시간이 빨리 흐르기만을 바랄 뿐이다. 하지만 민주당에는 한 마디 말해야 마음이 풀리겠다. 당신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민주당도 철학의 빈곤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우왕좌왕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