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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리당략을 내려놓고 선거구제 개편에 임하라

김민철(칼럼니스트)

 

[용인신문] 정치꾼은 다음 선거를 생각하고,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걱정한다. 매일 정치 관련 기사가 넘쳐나지만 우리는 정작, 정치가 실종된 시대에 살고 있다. 정치 기사는 범람해도 민생에 도움 되고 희망을 주는 뉴스는 찾아볼 수 없다.

 

한국 정치는 국민의힘과 민주당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한 지 오래다. 4년마다 돌아오는 국회의원 총선거는 어느 보수정당이 의석을 더 많이 차지하느냐를 놓고 피 터지게 싸우는 진흙탕이다. 단 한 표라도 많이 얻는 후보가 종다수로 당선되는 소선거구제는 13대 총선부터 이어져 왔다. 정치권은 제22대 총선거를 앞두고 현행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바꾸는 것을 모색하고 있다. 발단은 윤석열 대통령의 제안에서부터 탄력을 받았지만 그것은 아무래도 좋다. 대통령이 제안했든 국회가 필요해서 나섰든 중요한 것은, 현행 소선거구제는 지역에 기반한 거대 보수 양당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지금까지 존속되어왔으며 이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전두환 정권 시절에는 선거구당 2명을 뽑는 중선거구제를 채택하여 여야가 사이좋게 나눠 먹었다. 선거구제를 개편하면서 중선거구제에 방점을 두면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나눠먹기가 제도적으로 보장된다. 대선거구제에 방점을 둔다면 다당제 정착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계급과 계층의 대표성까지 담아낼 수는 없다. 한국 정치는 진보 정치가 뿌리내리기에는 매우 취약한 역사성을 갖고 있다.

 

선거구제를 개편하면서 현재와 같이 형식적인 비례대표제를 유지한다면 진보 정치세력이 유의미한 의석을 확보하기란 기대 난망이다. 계급-계층별 대표성을 확보하자면 비례대표가 최소한 전체의석의 1/3은 되어야 하며 정당명부제를 엄격하게 유지해야 한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고, 자전거도 두 바퀴로 굴러간다. 자동차는 최소한 4개의 바퀴로 굴러간다. 현재 기득권자인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자신에게 유리한 선거구제를 고집한다면 중대선거구제로 개편한다 해도 소선거구제에 비해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국회의석은 거대 보수양당에 의해 여전히 독점되고 진보정당은 지금껏 그래왔듯이 구색 맞추기에 그칠 것이다.

 

미국은 건국 이래 비례대표 없이 소선거구제를 유지해왔고 영국도 마찬가지다. 일각에서는 양당제가 정치의 안정성을 유지하는데 적합한 제도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좌우가 교차로 집권할 수 있는 정치적 토대가 갖춰졌을 때의 얘기다. 미국은 공화당이 집권하든 민주당이 집권하든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미국의 유권자는 정치시장에서 살 수 있는 상품이 두 개밖에 없으며 좋든 싫든 민주당과 공화당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영국도 마찬가지로 보수당과 노동당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 독일은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이 50:50이다. 석패율제도가 있어 지역구에서 아깝게 낙선해도 구제받을 수 있다. 한국의 권력구조는 대통령제다. 총선에서 집권당이 소수당이 되어도 야당의 협조를 받으면 대통령이 정치를 하는데 큰 애로사항은 없다.

 

원내교섭단체 구성요건도 현재의 20석을 유지할 필요는 없다. 다당제의 정착을 바란다면 비례대표 의석을 확대하고 소수정당이 연대하여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하면 된다. 다당제가 되면 정치가 불안정 할것이라는 우려는 경험론적 사고일 뿐이다. 13대 국회는 여소야대의 4당 체제였지만 당시 국회는 대화로 안정된 정치를 실현했었다.

 

정치권에서 대화가 실종되고 여야의 극한대결이 시작된 것은 ‘3당합당’ 때부터다. 여야는 눈앞에 보이는 의석에 급급하여 유불리를 계산하지 말고 어떤 선거제도가 다양성을 보장하는 가운데 합의를 이룰 수 있는가를 먼저 생각해주기를 바란다. 이번 선거구제 개편은 말뿐이 아니라 진일보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정치가 실종되고 대결만 남은 한국 정치가 성숙하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목전에 닥친 총선보다 한 세대를 내다본 결정을 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다소 불리하더라도 대승적인 결단을 내려 선거구제 개편에 임해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