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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사구팽의 지혜

손대선(전 한국기자협회 부회장)

 

[용인신문] 2010년대부터 대한민국 선거판에서는 김종인옹이 영입 1순위다. 한 줌의 인기만 얻었다 싶으면 진영을 가리지 않고 이 노정객을 모셔오기 위해 안달이다. 박근혜->문재인->윤석열로 이어지는 대통령  계보에는 그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요즘도 물밑에서는 그를 정치 스승으로 원하는 유력정치인의 움직임이 적지 않다는 전언이다. 장외에서는 그의 능력을 대수롭지 않게 평가하던 이들이 정치판에 발을 들여놓은 뒤 생각을 고쳐먹는 경우를 자주 봤다.

 

그에게 특별한 재주가 있을까. 우선 ‘경제민주화’라는 상징적 주특기를 제외하더라도 국민 눈높이를 맞추는 감이 탁월하다. 여기에 목표가 정해졌다 싶으면 앞뒤 가리지 않고 돌파하는 일관성이 더해지면서 여타 정치인들이 갖지 못한 개성을 구축했다. 그래서 대한민국 선거판에서만큼은 최고의 용병으로 대접받는다.

 

인기와는 별개로 토사구팽의 수난사가 겹친다. 선거 승리 뒤 권력자로부터 ‘손절’ 당하는 일이 잦다 보니 이 같은 이미지가 굳어졌다. 김옹의 토사구팽은 용병의 한계를 보여준다. 출중한 능력으로 선거판에서 위력을 발휘하지만 결국 고용된 이는 고용한 이 의지에 따라 무대 밖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김옹과 정치적 사제관계를 맺고 있다는 얘길 자주 듣는다. 정치 혈연으로만 본다면 박근혜와 유승민이 더 가까워야겠지만 과거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에서 함께 활동하면서 김옹의 감을 많이 배웠다고 본인이 주변에 털어놓았다.

 

정치입문 10년 만에 유력 야당 대표로 발돋움하고, 탄핵정당을 수권정당 위치에 올려놓은 정치력에는 김옹의 조언도 한몫했을 것이다.

 

향후 2년간 굵직한 선거가 없어 ‘정치 농한기’라고 불리는 요즘. 이 전 대표가 김옹과 마찬가지로 토사구팽의 피해자로 자주 거명된다. 언뜻 정치 스승의 불행을 물려받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전 대표를 향해 몰아치는 파고는 스승의 그것과는 차원이 달라 보인다.

 

단순히 선거 승리 후 논공행상에서 밀려나는 수준에 그치는 게 아니다. 국민의힘은 당헌.당규까지 개정해가면서까지 ‘이준석 지우기’에 나서고 있다. 이 전 대표 개인적 잘못 여부를 떠나 나이 어린 정치인이 특유의 공격적 언사로 쌓아놓은 업보로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당 대표를 지낸 이에 대한 이 같은 압박 수위는 현대 정치사에서 전례를 찾기 힘들다.

 

정권탈환에 성공한 국민의힘 입지는 겉으로는 탄탄해 보인다. '내로남불' 정당이란 빨간 딱지가 불은 더불어민주당과 최근 맞붙은 2차례 선거에서 모두 이긴 결과는 보수정당 특유의 저력을 빼놓고서는 설명이 안 된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이 보수정당의 고질적인 문제점은 선거가 끝났을 때 명백히 드러난다. 윤 대통령과 이 전 대표가 벌이는 내전도 따지고보면 낯설은 풍경이 아니다. 길게 볼 필요도 없다. 같은 당 소속임에도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사이에 매끄러운 바통터치만 있었다고 믿는 국민들은 별로 없다.

 

한신을 제외하고 토사구팽의 가장 극적인 예는 몽골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자무카는 라이벌 테무친을 세력에서 압도했다. 그는 테무친 군대를 사실상 괴멸시킨 뒤 축하연을 벌이다 자신이 용병으로 부려 먹은 치노스족 남성 귀족을 모조리 삶아 죽인다. 명령 불복종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이 모욕적인 처형방식은 몽골 초원에서 자무카의 평판을 훼손했다. 테무친은 이 틈을 타 극적인 재기에 성공했고, 자무카를 제압한 뒤 세계로 나아가 칭기즈칸 몽골제국을 이루었다.

 

선거 승리 뒤 토사구팽은 어쩔 수 없다. 한정된 승리의 과실을 모두 나눠가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분과 실리를 살릴 수 있는 토사구팽의 지혜는 필요하다. 윤석열 대통령이나 김동연 경기도지사, 이상일 용인시장 등 선거 승리자에게는 모두에게 해당한다.